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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비호감, 존재증명, 위로)

by eudeuk 2026. 4. 28.

SNS에서 누군가의 화려한 근황을 보다가 문득 "나는 뭘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스쳐간 적 있으신가요. 저는 그런 순간이 꽤 자주 있는데, 그럴 때마다 묘하게 더 떠들고 싶어지는 제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바로 그 감각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작품입니다.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를 쓴 박해영 작가의 신작으로, 보는 내내 불편하면서도 끝까지 눈을 떼기가 어려웠습니다.

## 비호감의 심리학, 왜 동만은 쉬지 않고 떠드는가

드라마를 처음 틀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주인공 황동만(구교환 분)이 입을 열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짜증을 내는 장면이 반복되는데, 시청자인 저도 그 감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드라마의 주인공은 어느 정도 공감 가능한 인물로 설정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에서 박해영 작가는 그 공식을 의도적으로 깨버립니다.

동만의 행동을 심리학적으로 들여다보면, 이는 자기방어기제(self-defense mechanism)와 연결됩니다. 자기방어기제란 내면의 불안이나 수치심을 다루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심리적 전략을 의미합니다. 동만이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내는 것은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공포를 목소리의 진동으로 상쇄하려는 몸부림에 가깝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꽤 오래 멈춰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자신 없을수록 더 크게 말하거나 더 많이 의견을 내는 경향이 있다는 걸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드라마가 동만을 통해 보여주는 건, 비호감의 이면에는 거의 예외 없이 깊은 결핍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 감정 워치와 자기인식, 드라마가 선택한 방식

이 작품에서 가장 독특한 장치는 감정 워치(Emotion Watch)입니다. 감정 워치란 인물이 느끼는 수치심, 분노, 불안 등의 감정 상태를 실시간으로 수치화해 화면에 표시해주는 설정으로,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는 인물의 내면을 관객에게 그대로 노출시킵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들을 보면서 느낀 건, 이 장치가 단순한 시각적 장치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감정 워치는 메타인지(meta-cognition)를 극적으로 구현한 도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메타인지란 자신의 사고와 감정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능력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이 능력이 높을수록 감정 조절이나 자기이해도가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 속 동만은 자신의 감정 수치가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도 그 행동을 멈추지 못합니다. 이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박해영 작가 특유의 대사는 이 장치와 맞물릴 때 더욱 날카로워집니다. "잘나서 나를 증명할 수 없을 땐 망가져서 나를 증명한다"는 문장은 읽는 순간 어딘가 찔리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자기파괴적 행동을 존재증명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인간의 심리를 이렇게 짧고 정확하게 표현한 문장은 쉽게 만나기 어렵습니다.

이 작품이 드라마적 카타르시스(catharsis)를 만들어내는 방식도 특이합니다. 카타르시스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예술 작품을 통해 감정이 정화되고 해소되는 경험을 가리킵니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을 응원하게 해서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을 보며 "저게 나인가"라는 불편한 인식을 통해 감정의 출구를 만들어냅니다.

이 드라마의 핵심 장치와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감정 워치: 인물의 내면 감정 수치를 실시간으로 시각화하는 설정
- 박해영식 대사: 인간의 밑바닥 감정을 압축적이고 직접적인 문장으로 표현
- 구교환의 연기: 허세와 비참함 사이의 미세한 감정 결을 섬세하게 구현
- 동질감 기반 위로: 완벽한 주인공이 아닌 못난 주인공을 통해 시청자와 공감대 형성

## 무례함을 파워로 착각하는 사회에 던지는 일침

제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업계 기득권자들을 향한 시선이었습니다. 20년째 데뷔하지 못한 동만이 업계 대선배들에게 신랄한 독설을 듣는 장면은 불편하지만, 드라마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싸가지 없는 게 파워인 줄 아는구나"라는 동만의 반격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아주 정확한 진단에 가깝습니다.

심리학 연구들에 따르면, 사회적 위계 구조 안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타인의 감정에 둔감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 권력 패러독스(power paradox)라 부르는데, 권력 패러독스란 공감 능력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얻은 사람이 그 지위를 얻은 이후에 오히려 공감 능력을 잃어가는 현상을 말합니다. 버클리대 심리학자 대처 켈트너가 정리한 이 개념은 드라마 속 기득권자 묘사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출처: Greater Good Science Center, UC Berkeley](https://greatergood.berkeley.edu)).

일반적으로 창작 업계에서 독설은 '직언'이나 '실력자의 품격'으로 포장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실제로 그런 장면들을 주변에서 꽤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매번 그 독설이 상대를 성장시키기보다는 단순히 발화자의 우월감을 확인하는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드라마는 그 불편한 진실을 가장 비호감인 인물의 입을 통해 내뱉게 한다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영리합니다.

## 시나리오가 약했던 진짜 이유, 사랑의 부재

드라마가 던지는 또 하나의 질문은 창작의 동력에 관한 것입니다. 동만의 시나리오가 20년 동안 힘을 갖지 못했던 이유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극 중에 등장합니다. 처음 이 대목을 봤을 때 저는 좀 의아했습니다. 창작 능력과 사랑 경험이 무슨 상관인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곱씹을수록 이건 단순한 로맨틱한 발언이 아닙니다. 서사학(narratology), 즉 이야기의 구조와 의미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에서는 좋은 서사란 인물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그 과정에서 변화를 겪는 구조를 기반으로 한다고 봅니다. 타인을 깊이 사랑해 본 경험이 없다면 그 간절함의 층위가 얕을 수밖에 없습니다. 글쓰기든 영화든, 결국 타인의 감정을 향한 민감도가 곧 서사의 깊이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은하(고민시 분)와의 관계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의미를 가집니다. 그녀는 동만을 교정하려 들거나 위로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봅니다. 심리치료에서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unconditional positive regard)이라고 부르는 태도인데, 이는 상대의 행동이나 감정을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인본주의 심리학자 칼 로저스가 강조한 이 개념이 드라마에서 가장 인간적인 형태로 구현된 장면들이 은하와 동만 사이에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https://www.apa.org)).

한 가지 솔직하게 덧붙이자면, 이 드라마가 모든 시청자에게 맞는 작품은 아닐 수 있습니다. 초반 동만의 행동은 실제로 시청을 이어가기 어려울 만큼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호흡이 느리고 감정 소모가 큰 전개는 박해영 작가 전작들과 동일한 패턴으로, 가벼운 분위기를 원하는 분들께는 버겁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불편함을 넘기는 과정 자체가 이 드라마의 일부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취향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본 뒤 남은 감각은, "나만 이렇게 못난 게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이었습니다. 위로를 직접적으로 건네지 않으면서도 결국 위로가 되는 작품이 얼마나 드문지 생각해보면, 이 드라마가 왜 박해영 작가의 이름을 달고 나왔는지 자연스럽게 납득이 됩니다. 아직 시작하지 않으셨다면 초반 2회의 불편함을 버텨보시길 권합니다. 그 불편함이 결국 이 드라마가 드리는 거울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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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youtu.be/-xW6Z1U3kiQ?si=KQCMcGT1BbZvcdY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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